모아쓰기와 자판 이야기
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한 줄로 늘어놓지 않고, 한 글자 안에 모아서 써요. 'ㅎ ㅏ ㄴ'을 '한'으로 묶는 이 방식을 모아쓰기라고 해요. 우리가 매일 키보드와 휴대폰으로 한글을 쓰는 것도, 자모당에서 자모를 차례로 눌러 단어를 만드는 것도 모두 이 모아쓰기 위에 서 있어요. 자모가 글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게요.
모아쓰기: 자모를 네모 안에 묶어요
영어는 알파벳을 옆으로 이어 써서 단어를 만들어요. 한글도 자모로 이루어진 글자지만, 소리 한 덩어리(음절)마다 자모를 모아 네모난 글자 하나로 써요. 훈민정음에도 '자모는 반드시 어울려야 소리를 이룬다'는 뜻의 설명이 있어서, 처음부터 모아쓰기를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어요.
풀어 쓰면: ㅎㅏㄴㄱㅡㄹ
모아 쓰면: 한글
모아 쓰는 자리는 정해져 있어요. 첫소리 자음이 왼쪽이나 위에, 가운뎃소리 모음이 오른쪽이나 아래에, 끝소리 받침이 맨 아래에 와요. 모음 모양에 따라 글자 모양이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요.
| 모음 모양 | 자모 자리 | 예 |
|---|---|---|
| 세로 모음 (ㅏ ㅓ ㅣ …) | 자음 왼쪽, 모음 오른쪽 | 가, 너, 미 / 밤, 길 |
| 가로 모음 (ㅗ ㅜ ㅡ …) | 자음 위, 모음 아래 | 고, 누, 그 / 곰, 눈 |
| 섞인 모음 (ㅘ ㅝ ㅢ …) | 자음 위, 모음이 아래와 오른쪽을 감쌈 | 과, 뭐, 의 / 관, 원 |
글자 하나에 자모가 두 개든 네 개든 크기는 같은 네모에 맞춰요. 그래서 '이'처럼 획이 적은 글자와 '읽'처럼 획이 많은 글자가 나란히 있어도 줄이 반듯하게 맞아요. 대신 눈으로 볼 때는 글자 하나가 자모 몇 개인지 바로 드러나지 않아요. 자모당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. '읽'을 보고 ㅇ ㅣ ㄺ 세 번을 눌러야 한다는 걸 머릿속에서 풀어내야 하니까요.
풀어쓰기를 하자는 생각도 있었어요
20세기 초에는 한글도 알파벳처럼 자모를 옆으로 이어 쓰자는 '풀어쓰기' 주장이 있었어요.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도 풀어쓰기를 연구했어요. 자모를 한 줄로 쓰면 인쇄할 때 활자 수가 크게 줄고, 타자기로 치기도 쉬워진다는 장점이 있었거든요.
하지만 풀어 쓴 글은 한눈에 읽기 어려웠어요. 'ㄱㅗㅇㅂㅜ'보다 '공부'가 훨씬 빨리 읽히죠. 모아 쓴 글자는 모양 하나가 음절 하나와 짝이 되어서, 눈이 글자 단위로 빠르게 훑어 갈 수 있어요. 결국 모아쓰기가 그대로 쓰였고, 대신 기계가 모아쓰기를 대신 해 주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발전했어요.
컴퓨터 속 한글은 11,172자예요
컴퓨터는 글자마다 번호를 붙여서 저장해요. 전 세계 글자에 번호를 붙인 유니코드에는 현대 한글로 만들 수 있는 글자가 11,172자 모두 들어 있어요. 이 숫자는 자모를 하나씩 곱해서 나와요.
| 자리 | 쓸 수 있는 자모 | 개수 |
|---|---|---|
| 첫소리 | 기본 자음 14 + 쌍자음 5 | 19 |
| 가운뎃소리 | 기본 모음 10 + 합쳐 만든 모음 11 | 21 |
| 끝소리 | 받침 27 + 받침 없음 1 | 28 |
19 × 21 × 28 = 11,172자
재미있는 건 이 번호가 아무렇게나 붙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. '가'부터 시작해서 받침이 하나씩 바뀌고, 그다음 모음이 바뀌고, 그다음 첫소리가 바뀌는 순서로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어요. 그래서 글자 번호만 알면 계산으로 첫소리·가운뎃소리·끝소리를 거꾸로 나눌 수 있어요. 자모당도 이 계산으로 오늘의 단어를 자모 버튼으로 나눠요.
11,172자 가운데 실제로 자주 쓰는 글자는 2천여 자 정도예요. 예전에 많이 쓰던 문자 표준에는 자주 쓰는 2,350자만 들어 있어서, '똠'처럼 드물게 쓰는 글자를 컴퓨터에서 쓸 수 없던 시절도 있었어요. 지금은 유니코드 덕분에 11,172자를 모두 쓸 수 있어요.
두벌식 자판: 자음은 왼손, 모음은 오른손
지금 우리나라 컴퓨터 키보드는 대부분 두벌식이에요. 자음 한 벌, 모음 한 벌, 이렇게 두 벌로 이루어져서 붙은 이름이에요. 1980년대에 국가 표준으로 정해진 뒤 가장 널리 쓰이고 있어요.
| 줄 | 왼손 (자음) | 오른손 (모음) |
|---|---|---|
| 윗줄 | ㅂ ㅈ ㄷ ㄱ ㅅ | ㅛ ㅕ ㅑ ㅐ ㅔ |
| 가운데 줄 | ㅁ ㄴ ㅇ ㄹ ㅎ | ㅗ ㅓ ㅏ ㅣ |
| 아랫줄 | ㅋ ㅌ ㅊ ㅍ | ㅠ ㅜ ㅡ |
한글 음절은 대부분 '자음 + 모음'으로 시작하니,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움직이게 돼요. 두 손을 번갈아 쓰면 한 손으로 연달아 치는 것보다 빨라서 꽤 똑똑한 배치예요. 쌍자음 ㄲ ㄸ ㅃ ㅆ ㅉ과 모음 ㅒ ㅖ는 Shift 키를 누른 채로 쳐요.
두벌식 자판에는 ㅘ, ㄺ 같은 키가 따로 없어요. 'ㅗ'를 치고 'ㅏ'를 치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ㅘ로 합쳐 주고, 'ㄹ' 다음에 'ㄱ'을 치면 ㄺ 받침으로 합쳐 줘요.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컴퓨터가 쉬지 않고 모아쓰기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.
자판으로 '닭': ㄷ ㅏ ㄹ ㄱ (네 번)
자모당에서 '닭': ㄷ ㅏ ㄺ (세 번)
자모당은 ㄺ, ㅘ, ㄲ처럼 한 자리에 들어가는 자모를 버튼 한 칸으로 만들었어요. 자판에 익숙한 사람은 처음에 ㄹ과 ㄱ을 따로 찾다가 헷갈리기도 해요. 이 차이는 쌍자음·겹받침 정리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요.
도깨비불 현상: 받침이 옆 글자로 건너가요
두벌식으로 '가을'을 칠 때 화면을 잘 보면 신기한 일이 생겨요. 'ㄱ ㅏ'까지 치면 '가', 이어서 'ㅇ'을 치면 받침으로 붙어 '강'이 돼요. 그런데 'ㅡ'를 치는 순간 ㅇ이 다음 글자로 건너가 '가으'로 바뀌어요. 이렇게 받침이 앞 글자에 붙었다 뒤 글자로 넘어가는 모습을 도깨비불 현상이라고 불러요.
두벌식에서는 같은 자음 키가 첫소리와 받침을 함께 맡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. 자음을 쳤을 때 컴퓨터는 이게 받침인지 다음 글자의 첫소리인지 아직 몰라요. 다음에 모음이 오면 '아, 첫소리였구나' 하고 옮겨 주는 거예요.
ㄱ → 가 → 강 → 가으 → 가을
세벌식 자판: 받침에 자리를 따로 줘요
세벌식은 첫소리 자음, 모음, 받침 자음을 세 벌로 나눠 놓은 자판이에요. 한글 타자기를 만든 공병우 박사의 방식에서 이어져 왔어요. 첫소리와 받침이 다른 키에 있으니 도깨비불 현상이 생기지 않고, 손가락이 첫소리 → 모음 → 받침 순서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빠르고 손이 덜 피곤하다는 사람들도 있어요.
다만 외울 키가 늘어나고, 대부분의 컴퓨터가 두벌식을 기본으로 쓰기 때문에 지금은 일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자판이에요. 두 자판을 비교해 보면 이래요.
| 두벌식 | 세벌식 | |
|---|---|---|
| 나눈 벌 | 자음 · 모음 | 첫소리 · 모음 · 받침 |
| 장점 | 키가 적어 배우기 쉬움, 어디서나 기본 | 도깨비불 현상 없음, 손 움직임이 고름 |
| 아쉬운 점 | 왼손 자음 쪽에 일이 몰림 | 외울 키가 많음, 설정을 바꿔야 함 |
자모당 버튼은 오히려 세벌식과 닮았어요. 같은 ㄴ이라도 '눈'의 첫소리 ㄴ과 받침 ㄴ은 따로 누르고, 첫소리 → 가운뎃소리 → 끝소리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니까요.
휴대폰 자판: 점 하나와 선 두 개
버튼 수가 적던 휴대폰에서는 한글을 더 적은 키로 쳐야 했어요. 그때 널리 쓰인 방식이 천지인이에요. 모음을 'ㆍ(하늘)', 'ㅡ(땅)', 'ㅣ(사람)' 세 키로만 만들어요. 이건 훈민정음이 모음을 만든 원리와 똑같아요.
ㅣ + ㆍ → ㅏ
ㆍ + ㅡ → ㅗ
ㅣ + ㆍ + ㆍ → ㅑ
자음도 키 하나를 여러 번 눌러 바꿔요. ㄱ 키를 한 번 누르면 ㄱ, 한 번 더 누르면 ㅋ, 또 누르면 ㄲ처럼요. 지금 스마트폰은 화면이 넓어져서 컴퓨터처럼 두벌식 자판을 띄워 쓰는 사람도 많지만, 천지인은 키가 크고 한 손으로 치기 편해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어요.
어떤 방식이든 결국 하는 일은 같아요. 사람이 자모를 차례로 넣으면, 기계가 그 자모를 모아 네모난 글자 하나로 만들어 줘요. 한글의 모아쓰기가 오래 살아남은 건 이렇게 기계가 대신 모아 줄 수 있을 만큼 규칙이 반듯하기 때문이에요.
한 번 정리해 볼까요?
- 한글은 자모를 음절마다 네모 안에 모아 써요. 모음 모양에 따라 자모 자리가 정해져요.
- 현대 한글로 만들 수 있는 글자는 19 × 21 × 28 = 11,172자이고, 유니코드에 모두 들어 있어요.
- 두벌식은 자음·모음 두 벌, 세벌식은 첫소리·모음·받침 세 벌로 나눈 자판이에요.
- 두벌식에서 받침이 다음 글자로 건너가는 모습을 도깨비불 현상이라고 해요.
- 휴대폰 천지인은 ㆍㅡㅣ 세 키로 모음을 만들어요. 훈민정음의 원리 그대로예요.
- 자모당은 ㄲ·ㅘ·ㄺ처럼 한 자리에 들어가는 자모를 버튼 한 칸으로 눌러요.
자모의 기본 짜임은 자모 쉽게 이해하기, 빨리 누르는 방법은 빨리 맞히는 요령에 정리해 두었어요. 자판 없이 자모를 하나씩 모아 보는 재미는 자모당에서 느껴 보세요.